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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유정 문학촌-김유정 작가의 흔적을 찾는 문학기행
  2. 이익선생묘

김유정 문학촌-김유정 작가의 흔적을 찾는 문학기행

국내관광지

실레마을에서 태어난 김유정은 줄곧 서울에서 자라고 생활하다 1931년에 23살의 나이로 귀향한다. 금병의숙이라는 일종의 야학을 설립하여 농촌계몽운동을 벌이던 그가 처녀작인 산골 나그네를 발표 한 것은 2년 후인 1933년. 실레마을에서 실제로 목격한 일을 소재로 활용한 처녀작 이후로도 김유정 소설의 대부분이 실레마을에서 구상되었고 작품의 등장인물도 상당수가 이곳에 실존했던 인물들이었다. 김유정문학촌에는 마을의 지도와 함께, 각각의 장소가 배경이된 작품 설명이 명시된 안내판이 있다. 저 뒷산은 동백꽃의 배경이 되었고, 이 물레방아는 산골나그네의 그 물레방아고, 저 위의 집은 봄봄의 장인 김봉필의 집이라는안내판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실레마을 전체가 김유정 작품의 산실이자 그 현장이란 것을 실감하게 된다.

문학촌에는 기념관과 함께 나즈막한 뒷산을 배경으로, 김유정이 태어난 생가와 디딜방아, 정자 등이 그 시대 모습대로 재현되어 있다. 아담한 규모의 문학촌을 문학관이 아니고 왜 문학촌이라 명했을까. 그것은 이곳에 김유정의 유품이 단 한 점도 없기 때문인데 병마와 투병하다 외롭게 숨을 거둔 후 오랜 친구인 안희남이 유고, 편지, 일기, 사진 등 일체의 유품을 가져가 보관하던 중 6.25 때 모두 가지고 월북한 탓이다. 하지만 기념관에 들어서면 유물이 없어도 충분히 김유정을 느껴볼 수 있다. 먼저 잔잔한 목소리로 김유정의 일대기를 설명하는 비디오물을 감상하며 그의 불행한 삶과 그 속에서 꽃피운 예술세계를 접한 후, 김유정이 태어난 해부터 사망할때까지 연대별로 당시 한국 문학의 흐름을 파악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 문학관 중에 가장 활발하게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체험행사를 지속적으로 마련하는 김유정문학촌에서는 매달 작품 속의 모티브를 활용한 문학체험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문의 및 안내033-261-4650
  • 홈페이지http://www.kimyoujeong.org/
  • 주소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김유정로 1430-14
  • 이용시간하절기 09:30~18:00
    동절기 09:30~17:00
  • 휴일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추석 당일
  • 주차있음
  • 입 장 료입장료 2,000원
  • 점자블록점자유도로 있음_시각장애인 편의시설
  • 점자홍보물 및 점자표지판점자안내판 있음(김유정역 출입구 앞)
  • 출입통로주출입구는 경사로가 있어 휠체어 접근 가능함
  • 주차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있음(2개)_무장애 편의시설
  • 접근로출입구까지 경사로가 있어 휠체어 접근 가능함
  • 화장실장애인용 화장실 있음

이익선생묘

국내관광지

실학의 대가 성호(星湖) 이익(李瀷)선생은 평안도 운산에서 1681년(숙종7년)부친 이하진(李夏鎭)이 유배길에 운산에 와 있을때 태어났다. 이익 선생은 그가 평생토록 떠나지 않고 거주하며 학문의 커다란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경기도 안산군 첨성리(瞻星里:지금의 안산시 상록구 일동)라는 지명에서 『星(성)』자를 따라 그의 호를 지었다. 이익선생은 1705년(숙종 31년) 증광문과(增光文科)를 보았으나 낙방하고 이듬해 형 잠(潛)이 당쟁으로 희생되자 벼슬을 단념하고 안산 첨성촌(지금의 안산시 상록구 일동)에 머물며 일생을 학문에 전념하였다. 유형원의 학풍을 계승하여 실학자의 중조(中祖)가 되었으며 그의 학풍은 그후 안정복, 이가환, 이중환, 정약용 등에게 계승되었다. 이익선생은 학문을 깊이 연구하는 데에만 몰두하여 천문, 지리, 의학, 재정지방제도, 과거제도, 학제, 병제, 관제 등 현실적인 문제에 비판과 이상 및 사상을 널리 써놓은 성호사설(星湖僿說)을 비롯한 곽우록(藿憂錄), 성호문집(星湖文集)을 남겼으며 조정에서는 선생이 돌아가신 후에 학덕을 높이 평가하여 이조판서에 추서하였다. 선생은 1763년(영조 39년)에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 위치 및 구조 *

그의 묘소는 수원.인천간 산업도로가 바라보이는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는 데 묘소의 석물로는 묘비(墓碑)와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 망주석(望柱石)이 있다. 봉분의 규모는 600×550×220cm이다. 묘비의 재질은 오석(烏石)이며 전면에는 "星湖先生 李公諱瀷之墓 贈 貞夫人 高靈申氏左 贈 貞夫人 酒川睦氏右"라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은 공이 사후 204년이 되는 1967년에 건립되었으며 규모는 옥개석이 90×60×50cm이고 비신은 146×57×26cm, 기대석100×62×20cm이다. 상석(床石)의 재질은 화강암으로 규모는 121×83×58c 이며 향로석은 39×28×39cm이다. 망주석의 높이는 165cm이다. 두향(頭向)은 북향으로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묘소로 오르는 길은 계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무덤 앞에 안내판이 있다. 묘소 우측에는 사당이 있다.

* 시대 - 조선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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