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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에 해당되는 글 6건

  1. 서울 암사동 유적
  2. 연기향토박물관
  3. 교동향교
  4. 경주 대릉원 일원

서울 암사동 유적

국내관광지

지난 1925년 한강대홍수로 처음 유적지가 발견된 이래, 여러 차례의 발굴 과정을 거쳐 1979년 7월 26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 267호로 지정된 암사동 선사주거지는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최대 집단취락지이다. 전체 넓이 23,600여평의 대지 위에 잔디 및 나무가 우거져 있으며 556평 규모의 2개소의 원시생활전시관, 그리고 야외에 9개의 움집 및 관람객이 직접 들어가서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직접 볼 수 있는 1개소의 개방형 "체험움집"이 설치되어 있다.

원시생활 전시관의 주요 전시 내용은 6000년 전의 집터 8개, 빗살무늬토기, 석기, 돌도끼 등 신석기시대의 유물 및 선사시대 영상 방영을 위한 50석 규모의 영상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에 대한 각종 입체모형, 발굴 당시의 현장 축소 모형, 자동 작동 62인치 3D영상 프로젝션TV, 자료검색용 터치스크린 컴퓨터, 직접 실습할 수 있는 불피우기도구, 기념사진촬영을 위한 원시인 모형 등이다. 개방형 "체험 움집"에는 29평 규모에 창을 손질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돌칼로 고기를 써는 어머니의 모습, 물고기를 굽는 아들의 모습, 음식을 먹고 있는 딸의 모습 및 당시 음식물을 보관해 두었던 저장고 시설, 자동감지설명 나레이션이 설치되어 있어 관람객들의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이 암사동 유적지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잘 정비된 신석기시대의 유적지이며, 특히 출토 유물 중 신석기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토기인 빗살무늬토기가 유명하다.

상세정보

  • 홈페이지http://sunsa.gangdong.go.kr
  • 주소서울특별시 강동구 올림픽로 875(암사동)
  • 이용시간09:30~18:00(30분 전까지 입장)
    ※ 아침 운동시간 무료개방 10~3월 06:00~09:00 / 4~9월 05:30~09:00
  • 휴일매년 1월 1일,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화요일 휴관)
  • 주차있음(이용시간 09:3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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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향토박물관

국내관광지

* 세종특별자치시(구, 연기군)의 역사와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 연기향토박물관 *

연기향토박물관은 세종특별자치시내 출토유물, 전래유물을 모아 만든 박물관으로 1996년 8월 14일 개관했다. 이 박물관에서는 연기군의 역사,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특히 세종특별자치시내 예도요지에서 출토된 자료가 많고 선사 유물, 삼국,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 근대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유물은 불상, 무기(화살·창), 오층석탑,
토기, 청자, 분청사기, 청동, 백자, 기와, 그림(민화), 상서문, 목판, 책, 소방기구, 가구, 농사관련 각종 기구, 나무로 만든 쥐덫 등 총 1,000여 점이다. 유물 외에 민속놀이 기구와 지명의 유래, 전설, 설화, 민속 등에 관한 기록도 전시되어 있어 지역의 역사를 아는 데 도움이 된다.



* 다양한 시기를 망라한 세종특별자치시의 유적과 유물 *

세종특별자치시는 금강이 흐르고 있어 문명이 일찍 형성된 곳으로, 선사시대부터 시대별 유적지가 많은 곳이다. 금강변에는 고인돌 20여기가 산재하여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왕국인 웅진성을 방어하기 위해 연기군전역에 성을 쌓았으며, 백제말 부흥운동의 근거지로 나라가 멸망하자 백제유민이 <비암사>란 절을 짓고 불상을 시납했다.



고려시대에는 몽고합단적을 쳐부순 연기대첩지이고 임진왜란 때 왜병의 진입경로로 많은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6.25 전쟁 당시 금강방어전투가 치열했던 곳으로 군사적 방어지역이기도 했다. 조선초기 분청사기를 구웠던 가마터 40여 기가 산재하여 많은 도자기를 구웠는데, 서민보다는 궁궐에 납품했던 수준높은 도자기를 만들었던 곳으로 <예빈시> <사선서><인수부> 등의 궁사명이 그릇 가운데 씌여 있어 이를 입증한다. 박물관이 위치한 곳도 조선초기 분청사기를 구웠던 가마터로 박물관 주변에서도 도자기편이 많이 출토된다.

상세정보

  • 문의 및 안내044-862-7449
  • 홈페이지연기향토박물관 http://cafe.daum.net/yghmuseum
  • 주소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양대길 34-4
  • 이용시간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
  • 휴일설날, 추석
  • 주차주차 가능
  • 이용요금개인 : 일반 3,000원, 학생 2,500원
    단체 : 일반 2,500원, 학생 2,000원
    ※ 단체는 20인 이상
  • 체험프로그램전통놀이, 다례예절, 전통예절, 솟대 만들기, 한지공예, 인절미 떡 만들기, 작은 솟대 및 장승만들기 등

 

교동향교

국내관광지

1127년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창건 당시 화개산 북쪽에 있던 것을 조선 중기에 부사 조호신(趙虎臣)이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966년에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성전·동무(東廡)·서무(西廡)·명륜당·제기고(祭器庫)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성전 안에는 5성(五聖)·송조2현(宋朝二賢) 및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여러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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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대릉원 일원

국내관광지

* 경주 노동리 고분군

경주 중심부인 노동동 일대에 자리하고 있는 고신라시대 무덤들로, 봉황대/식리총/금령총등이 포함되어 있다. 봉황대는 높이 22m, 지름 82m로 황남대총 다음으로 규모가 큰 무덤이다. 봉황대 남쪽에 있는 식리총은 봉분 높이 6.5m, 지름 30m로 1924년에 조사한 결과 덧널(곽)을 설치한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임이 밝혀졌다. 내부에서는 귀고리, 유리옥의 가슴장식과 은제허리띠, 은팔찌, 고리자루큰칼(환두대도), 쌍룡 고리자루큰칼, 말갖춤(마구), 옷칠그릇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금관이나 금동관이 없는 대신 금동제신발 (식리)이 발견되었는데, 문양이 독특하고 매우 우수하여 이 무덤의 이름을 식리총이라 하였다. 봉황대의 남쪽에 있는 금령총 역시 1924년에 조사된 무덤으로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판 뒤바닥에 냇돌과 자갈을 깐 높이 4∼5m, 지름 약 18∼20m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이다. 금관, 금제귀고리, 금팔찌, 금제허리띠, 동제신발, 철제솥, 옷칠그릇, 유리그릇, 토기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토기 중 배모양 토기와 기마인물 토기가 특이하다. 이 무덤은 규모가 작으며, 금관과 장신구의 크기가 작고 순장의 흔적이 보여 신라 왕자의 무덤으로 추측된다. 식리총과 금령총은 비슷한 규모와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봉황대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면적 - 16,902㎡)

* 경주 노서리 고분군

경주시 서북쪽 노서동 일대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의 무덤들로 현재 10여 기의 크고 작은 무덤이 남아있다. 그 중 가장 북쪽에 있는 제130호 무덤은 노동동 고분군의 봉황대와 대칭을이루어 서봉황대라 불린다. 노서리 고분군의 내부구조는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과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금관총/서봉총/호우총/은령총 제138호 무덤들은 신라 때의 것으로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판 뒤 덧널(곽)을 설치하고 냇돌과 자갈로 쌓은 돌무지덧널무덤이다. 쌍상총·마총·우총 등은 내부에 깬돌로 사각형의 널방(석실)을 만들고 널길(연도)을 둔 굴식돌방무덤으로 통일신라 때의 것이다. 금관총은 1921년에 조사되었는데,금관과 금제허리띠를 비롯한 각종 호화로운 금공예품이 많이 출토되었다. 서봉총은 표주박 모양 쌍무덤의 북쪽 무덤으로, 봉황장식이 달린 금관이 출토되었다. 또한 연대를 새긴 은으로 된 뚜껑이 있는 그릇(은합)이 출토되어 5세기 전후에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은령총과 쌍무덤을 이루는 호우총은 광복 후 최초의 유적발굴로 광개토대왕을 기념하여 을묘년(451)에 만들었다는 글자가 쓰여진 동합이 출토되었다. 쌍상총·마총·우총 등은 통일신라 초기의 굴식돌방무덤으로 대부분 도굴되어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쌍상총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토기조각이, 마총에서는 말뼈와 안장틀 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노서리 고분군은 노동리 고분군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돌무지 덧널무덤과 전기 돌방무덤이 밀집해 두 종류의 무덤 교체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경주지역의 무덤 변화 과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면적 - 44,200㎡)

* 경주황남리고분군

경주시청 남쪽 건너편 일대의 고분군이며 미추왕릉(味鄒王陵)을 비롯한 약 250기(基)의 고분이 있으며 고분공원이 조성되었다. 1973년에는 천마총을 발굴하여 금관 및 천마를 채색으로 그린 백화수피장니(白樺樹皮障泥)가 나와 신라시대회화로서는 유일최고(唯一最古)의 것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하였는데, 지금은 내부를 들어가 볼 수 있게 복원하여 공개하고 있다. 또한 고분중에 가장 큰 황남대총 98호은 1973∼75년 사이에 발굴 후 복원하였는데 통일신라 이전에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과 소형석곽분(小形石槨墳)이 혼재하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 연혁

경주시내 황남동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 신라초기의 무덤들로 일부는 대릉원 구역안에 있다. 일제강점기에 붙여진 일련번호 90∼114, 151∼155호인 원형으로 흙을 쌓아올린 30기의 무덤이다. 큰 무덤은 돌무지덧널무덤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이고 주변에는 봉분이 없어진 작은 무덤이 있다. 대릉원 안에는 전 미추왕릉을 비롯하여 천마총(天馬塚)과 황남대총(皇南大塚) 등이 있다. 1973년에 발굴조사된 천마총은 지름 47m, 높이 12.7m로 금관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나왔다. 당시 천마도가 그려진 말안장 드리개가 출토되었기 때문에 ''천마총''이라 이름하여 내부를 공개하고 있다. 또한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발굴조사된 황남대총은 남북길이 120m, 동서길이 80m, 높이 23m의 거대한 쌍무덤으로 남쪽 무덤에서는 금동관과 남자의 뼈 일부 및 많은 유물이 나왔다. 북쪽 무덤에서도 금관과 부인대(夫人帶)라는 글씨가 있는 은제 허리띠 등 많은 유물이 나왔다. 남쪽 무덤의 주인은 남자, 북쪽 무덤의 주인은 여자로, 부부의 무덤을 붙여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상세정보

  • 문의 및 안내054-750-8650
  • 홈페이지http://www.gyeongju.go.kr/tour
  •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계림로 9
  • 지정현황사적 제512호(2011.07.28 지정)
  • 입 장 료[천마총 - 09:00~22:00]
    개인) 성인 3,000원 / 청소년,군인 2,000원 / 어린이 1,000원
    단체) 성인 2,400원 / 청소년,군인 1,600원 / 어린이 800원